"억압자는 피억압자 중에 공모자가 없다면 그토록 강력할 수 없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애매성의 윤리학에서 남긴 이 문장은, 권력이 단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님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에드워드 R. 머로 역시 "우리 모두가 그의 공모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한 국가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두 문장은 시대도 맥락도 다르지만, 같은 구조를 가리킨다. 억압의 지속은 억압자 혼자의 힘이 아니라, 그것을 묵인하고 동조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이들의 참여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공모(共謀)란 무엇인가
공모는 통상 범죄나 음모의 맥락에서 사용되지만, 사회철학적으로는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진다. 어떤 구조나 체제가 유지되는 데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기여하는 행위 전반을 포괄한다. 보부아르가 말한 '공모자(accomplice)'는 반드시 의도적인 협력자를 뜻하지 않는다. 체제의 논리를 내면화하거나, 저항을 포기하거나, 더 약한 타자를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보전하려는 행동도 공모의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개념은 도덕적 비난보다는 구조 분석의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누가 나쁜 사람인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억압적 구조가 어떻게 스스로를 재생산하는가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억압자는 피억압자 중에 공모자가 없다면 그토록 강력할 수 없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애매성의 윤리학

피억압자가 억압에 가담하는 방식
억압 구조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구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아래는 사회학과 정치철학에서 공통적으로 논의되는 주요 형태들이다.
- 내면화된 억압(internalized oppression): 지배적 집단의 가치관과 편견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상. 자기 집단에 대한 낮은 평가나 지배 집단을 향한 동경으로 나타날 수 있다.
- 대리 처벌(lateral violence): 억압자를 향하지 못하는 분노와 좌절이 같은 집단 내부의 다른 구성원을 향하는 현상. 내부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켜 집단적 저항력을 약화시킨다.
- 생존을 위한 협력: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억압자의 명령을 수행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이는 단순한 도덕 판단보다 구조적 강제력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 침묵과 방관: 부당함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에게 미칠 불이익을 우려해 발언하지 않는 태도. 이는 소극적 공모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행동 패턴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만 환원될 수 없다. 구조적 압력이 개인의 선택지를 어떻게 제한하는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침묵은 중립인가
머로의 발언은 냉전 시대 매카시즘이 절정에 달했던 1950년대 미국에서 나왔다. 당시 수많은 시민과 언론인들은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의 반공 마녀사냥에 공개적으로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침묵을 선택한 이들 모두가 매카시즘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결과적으로 그 체제가 수년간 지속되는 데 기여했다.
침묵이 중립인가 하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철학적으로 볼 때, 어떤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그 구조를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낳는다. 이것이 침묵이 단순한 비참여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행위로 분류될 수 있는 이유다.
"우리 모두가 그의 공모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한 국가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을 수 없다." — 에드워드 R. 머로

역사 속 사례로 본 구조적 공모
보부아르와 머로의 통찰은 추상적 철학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의 여러 국면에서 그 구체적인 형태를 관찰할 수 있다.
| 사례 | 억압 구조 | 공모의 형태 |
|---|---|---|
| 나치 독일 | 전체주의 국가 권력 | 유대인 이웃 신고, 공무원·경찰의 명령 복종, 시민의 침묵 |
| 미국 매카시즘 | 반공 이데올로기 기반 탄압 | 동료를 청문회에 고발, 언론의 자기검열, 지식인의 침묵 |
| 식민지 통치 | 외부 제국 권력 | 현지 협력자 계층(부역자) 활용, 분열 조장과 내부 경쟁 유도 |
| 직장 내 괴롭힘 | 위계적 조직 문화 | 목격자의 방관, 동료의 소극적 동조, 피해자의 자기 비하 |
이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억압 구조가 피억압자들 사이에 분열을 만들어내고 그 분열이 억압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는 점이다.

개인의 책임과 윤리적 선택
보부아르는 애매성의 윤리학에서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핵심 주제로 다룬다. 그녀의 관점에서 인간은 상황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지 않으며, 동시에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다. 이 '애매성(ambiguity)' 안에서 윤리적 선택이 이루어진다.
구조적 억압 안에 있는 개인에게 '올바른 선택'을 요구하는 것은 때로 현실을 무시한 요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동시에, 구조를 핑계로 모든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자유가 존재하는 한 선택도 존재하고, 선택이 존재하는 한 책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 구조적 제약을 인식하면서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저항의 여지를 탐색하는 것
- 자신의 침묵이나 동조가 어떤 효과를 낳는지 의식적으로 성찰하는 것
- 다른 이들의 저항을 지지하거나 연대하는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
이러한 선택들이 항상 거창하거나 영웅적일 필요는 없다. 일상의 작은 결정 속에서도 공모와 저항의 갈림길은 존재한다.

이 통찰이 오늘날에 갖는 의미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확장된 오늘날, 공모의 형태는 더욱 복잡하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알고리즘이 편향된 콘텐츠를 증폭할 때 그것을 공유하고 소비하는 행위, 온라인 혐오 발언에 침묵하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 조직 내 부당한 문화를 알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행위 등이 모두 이 논의의 영역 안에 포함될 수 있다.
보부아르와 머로의 말은 억압의 구조를 특정 악인의 문제로만 환원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동시에 이 통찰은 구조 내부에 있는 모든 개인을 동등하게 책임자로 만드는 논리로 오용될 수도 있다. 권력의 차이와 선택지의 차이를 무시한 채 침묵한 피억압자와 억압자를 동일시하는 것은 이 철학이 의도한 바가 아니다.
결국 이 두 문장이 공유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억압은 혼자 서 있지 않는다. 그것이 서 있는 토대를 살피는 것이 구조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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